수 초이와 짐 데이비스의 랍스터 파티 8,000병 와인 셀라 구경도

얼마 전 베벌리 힐스의 친구 집에서 열린 랍스터 파티에 갔었다. 수 초이(Sue Choi)와 그의 남편 짐 데이비스(Jim Davis)는 일년에 두어차례 친구들을 잔뜩 초대해 바비큐 파티나 랍스터 파티를 열고 푸짐한 만찬을 선사하는 세상에서 가장 좋은 친구다. 

더 감격적인 것은 짐이 심한 와인애호가여서 파티에 늘 여러 종류의 맛있는 와인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얼음물에 차게 담가둔 스파클링 와인을 기본으로 랍스터 파티에는 화이트 와인들이, 바비큐 파티에는 레드 와인들이 테이블 가득 서브되곤 한다.

유유상종이라, 그 짐의 친구들도 와인광팬들이어서 그쪽 테이블에 가보면 다들 잘 숙성된 명품와인들을 들고 와서 경쟁적으로 따는 바람에 마치 와인 전문가들의 시음 테이블처럼 변하곤 한다. 나도 몇 번인가 집에 있는 와인을 들고 가서 오픈한 적이 있는데 한인들의 테이블은 영 그런 분위기가 아니어서 아무도 가져오지 않고 다들 내 것만 쳐다보고 있으니 왠지 손해 보는 듯해서 다시는 가져가지 않게 되었다. 

빨갛게 익은 큼직한 랍스터를 한 마리씩 뜯어가며 한참 먹고 마시는데 옆 테이블에서 누군가 와인 한 병을 들고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주인장이 이게 굉장히 비싼 와인이라는데 TCA가 있어서 버린다고 해서 얼른 가져왔다”고 했다. 그러면서 TCA가 뭐냐고 물으니 다들 모른단다. 그걸 모르면서 남이 버리는 와인을 들고 온 건 또 뭔가. 

TCA는 코르크에 번식하는 박테리아를 말한다. TCA가 와인 맛에 영향을 미치면 흔히 콜크드(corked) 혹은 콜키(corky)라 하고, 불어로는 부쇼네(bouchonne)라고 한다. 이런 와인에서는 과일향이 사라지고 곰팡이, 젖은 종이냄새, 오래된 서가의 먼지 같은 맛과 향이 난다. 한마디로 와인 맛을 망치는 주범인 것이다. TCA의 번식 정도에 따라 맛의 변질도 미미하거나 심할 수 있는데, 많은 사람이 그 맛을 감지하지 못해서 그냥 마시곤 한다. 

그날의 TCA 와인은 프랑스 론의 2001년산 샤토 드 보카스텔(Chateau de Beaucastel)이었다. 가격으로 치면 100달러 정도 되니 굉장히 비싼 건 아니지만, 굉장히 좋은 와인인 건 맞다. 가격과 상관없이 완벽한 조건의 셀라에서 18년간 숙성했으니 TCA만 아니라면 너무나 부드럽고 환상적으로 잘 익었을 것이다.

조금 따라서 맛을 보니 심하게 콜키한 건 아니고, 살짝 느껴질 정도였다. 샤토뇌프 뒤 파프 특유의 복합적인 맛이 많이 사라지긴 했지만 이 정도면 와인 맛 잘 모르는 사람들은 그냥 마실 수 있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와인 구력 30년, 팔레트가 민감한 짐은 그 작은 맛의 결함도 용서하지 못하고 미련 없이 버린 것이다.

식사를 마치고 내친김에 짐의 와인셀라 구경에 나섰다. 그가 직접 지었다는 와인셀라는 전에도 몇번 들어가 보았지만 발 디딜 틈 없이 와인박스가 쌓여있고 복잡해서 대충 보다가 추워서 돌아 나오곤 했는데 이번에 가보니 전보다 훨씬 깨끗하게 정리돼있었다. 

입구에서 몇개 뽑아보니 1970~80년대 부르고뉴 그랑 크뤼가 수두룩하다. 안쪽 깊이 들어갈수록 더 귀한 와인들이 잠자고 있는데 콜렉션의 80% 이상이 프랑스 와인이다. 그 대부분은 보르도 그랑 크뤼로, 20세기 최고로 치는 1982년산이 레이블마다 몇 케이스씩 쟁여있다니 그 방대하고 위대한 콜렉션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도대체 몇 병이나 갖고 있냐고 물어보니 이 셀라에만 6,700여병, 다른 스토리지에 1,200병, 자기 회사에 60케이스(720병)… 그것만 해도 8,000병이 넘는다. 매일 한 병씩 마신다 해도 22년이 걸리는 양이다.

짐, 만수무강하시고 와인 친구가 필요하면 언제든 부르세요. 

글 : 정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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