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병의 무통 로쉴드 1990, 2003 우정을 축하하며 추억을 만들다

지난 연말 보르도 명품와인 ‘샤토 무통 로쉴드’(Chateau Mouton Rothschild)와 함께 한 두가지 뜻 깊은 일이 있었다.(무통 로쉴드는 보르도 등급체계 ‘그랑 크뤼’에서 1등급 5대 와인의 하나다)

하나는 친구의 호의로 크리스마스 파티에서 1990년산 무통 로쉴드를 마신 일이고, 다른 하나는 내가 갖고 있던 2003년산 무통 로쉴드를 친지에게 선물한 일이다. 둘 다 오래된 인연에서 비롯된 일이고, 아주 오래 특별한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15년 동안 이어져온 친구들과의 연말파티는 늘 특별한 와인을 마시는 날이기도 하다. 그동안 마신 와인들을 떠올려보면(다 생각나진 않지만) 리스트가 화려하기 짝이 없다. 초창기에는 와인 가격이 지금처럼 비싸지 않아서 고급 샴페인과 보르도 그랑 크뤼, 부르고뉴 명품 와인들을 겁 없이 마셔댔고, 비용을 여럿이 나눴기 때문에 크게 부담스럽지도 않았다.

그런데 이번 파티에서는 호스트가 우리의 오랜 우정을 축하하자며 자신의 셀라를 열고 1990년 빈티지의 무통을 꺼내온 거였다. “맛있는 와인은 그 맛을 알고 함께 즐길 수 있는 사람들과 마시는 게 최고”라는 그의 말은 와인애호가들의 금과옥조 1번, 모두의 감격과 감사는 말로 할 수 없었다.    

1990 무통은 30년 된 와인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생생하고 강건했으며 보르도 그랑 크뤼 특유의 짙은 숲속 냄새, 트러플 향이 물씬한 깊고 아름다운 맛이었다. 이래서 그랑 크뤼라고 하는 거지, 하는 말이 절로 나왔다.

무통은 매년 레이블에 유명화가의 그림을 넣는 것으로 유명한데 그 해의 표지는 영국화가 프랜시스 베이컨이 그린 것이었다. 인간의 몸을 원초적인 살덩어리로 표현하는 베이컨은 여기서도 그다운 그림을 선사했다. 미술 전문가 친구는 “와인이 몸 안으로 흘러들어가는 감각이 그대로 느껴지는 농담 같은 그림”이라고 해석했다. 
 

그로부터 며칠 후, 나는 포터 랜치에 사는 노부부에게 오래 보관해온 2003 무통을 선물했다. 나보다 연배가 높은 두 분은 오랜 와인친구로, 그 인연도 아마 15년이 넘었을 것이다. 두 분은 그 옛날부터 주말마다 산타바바라로 와인을 마시러 다니는 멋쟁이 커플, 자연스럽게 시음여행에 동행하거나 가끔 자택에서 여는 파티에 초대받는 일이 이어졌다.    

그런데 늘 송구했던 것이, 잊을 만하면 와인 두병을 인편으로 보내주시는 거였다. 아무리 그러지 마시라고 해도 와인은 친구와 나눠 마셔야 즐겁다고, 앞의 친구와 같은 이야기를 하곤 하셨다. 그렇게 감사한 부담이 쌓여만 가던 중 이번 연말에 이를 갚을 기회가 왔다. 두 분의 금혼식에 초대받은 것이다. 

어떤 선물을 할까 고민하던 중 내가 가진 소중한 와인을 드리는 게 가장 적절할 것 같았다. 2003년산은 앞으로도 20년은 충분히 더 가겠지만 지금 마셔도 잘 익은 맛을 음미할 수 있는 빈티지다. 가격(현시가 약 700달러)으로 치면 그동안 받은 사랑에는 근처에도 못 가겠지만 이런 와인은 자기 돈 주고 사먹게는 안 되는 와인이고, 나로서는 정말 아끼는 소장품으로 최대한 감사와 축하를 표현한 셈이라 마음이 기쁘고 뿌듯했다. 

2003년은 무통이 150주년을 맞은 해로, 레이블에는 그림 대신  창립자 나타니엘 드 로쉴드 남작의 사진을 넣었다. 색깔 바랜 흑백사진의 배경에 보이는 글씨는 그가 1853년 보르도 땅을 매입한 증서로, 무통의 가장 오래된 유산이다. 현재 무통은 그의 6대손이 경영하고 있다.

글 : 정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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