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 와인 5년 익혀서 마셔보세요”

와인은 언제 마셔도 맛있지만 좀 묵혀두었다 마시면 더 맛있다. 특히 화이트 와인보다는 레드 와인이 숙성의 효과를 많이 보기 때문에 질 좋은 레드 와인은 5~10년 정도 익혀서 마실 것을 권한다.

웬 상식적인 이야기냐고? 그런데 그 상식이 많은 사람들에게 그렇게 만만하지가 않은 모양이다. 가끔 친구들과의 모임에 10년 정도 된 와인을 가지고 나가면 다들 놀라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함께 와이너리 여행을 갔을 때 다같이 샀던 와인인데 자기들은 이미 오래전에 다 마셨다는 것이다. 그걸 어떻게 지금까지 안마시고 있었냐며 약 오른 표정을 짓기도 한다.

마시고 싶어 죽겠는데 따지 않고 버틸 수 있으려면 세가지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 첫째 와인 냉장고가 있어야 하고, 둘째 현재 욕망의 노예가 되기보다 미래의 영광을 믿고 참는 인내심이 있어야 하며, 셋째 그 유혹을 물리칠 수 있도록 도와줄 대안, 즉 에브리데이 와인이 늘 준비돼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셋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에브리데이 와인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인내심 많은 사람도 당장 와인을 마시고 싶거나 꼭 마실 일이 있는데 다른 초이스가 없으면 저장해둔 와인을 따게 되니까.

그런 고문의 시간을 지나며 숙성한 와인의 대가는 부드러운 맛이다. 오랜 기다림을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 아름답다고 말하고 싶다. 젊은 와인의 거칠고 강렬한 맛과 향과 질감이 순화되어 복합적인 부케와 섬세한 맛을 갖게 된다.

레드 와인의 잘 숙성된 맛을 즐기고 싶다면 품질이 보증된 와인을 여러병 구입해 잘 보관해두시길 권한다. 5년이 아니라 1년만 지나도 맛이 달라지므로 해마다 특별한 날 한병씩 꺼내 맛본다면 숙성의 진화까지 알 수 있는 즐겁고 흥분된 순간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수백달러 짜리만이 아니라 30~50달러 정도의 카버네 블렌드도 몇년 지나면 훨씬 우아해지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면 어떤 와인을 숙성시키는 것이 좋을까? 와인의 숙성에 필요한 것은 태닌, 산도, 당도로서 이런 요소가 풍부하고 균형잡힌 와인일수록 더 오래 잘 익어갈 수 있다. 이 요소들의 함유량은 품종에 따라 다르므로 와인의 숙성 연한도 품종에 따라 차이가 난다. 한마디로 가벼운 품종보다는 무겁고 진한 품종이 더 오래 숙성하는 것이다.

레드 와인 중에서 가장 오래 숙성할 수 있는 것은 네비올로(Nebbiolo) 품종이다. 이탈리아의 바롤로와 바바레스코 지역에서 나오는 이 와인은 태닌이 너무 많아서 30년 정도는 우습게 저장할 수 있다. 다음으로는 스페인 리오하 품종인 템프라니요(Tempranillo), 이탈리아 토스카나의 산지오베제(Sangiovese), 프랑스와 우루과이에서 재배하는 타나트(Tannat) 등이 25년까지 무난하게 익어간다.
 

프랑스가 원산지인 카버네 소비뇽, 멀로, 모나스트렐(Monastrell 혹은 무르베드르 Mourvèdre)5~20년 정도 숙성했을 때 가장 맛있다. 이어 시라, 피노 누아, 그르나슈, 카버네 프랑의 숙성 연한은 3~15년까지로 본다. 말벡은 10년을 넘기지 않는 것이 좋고, 진판델은 그보다도 오래 버티지 못한다.
 

그런데 이 모든 연수는 일반적이고 평균적인 것이며 와인에 따라, 지역에 따라, 양조법에 따라 차이가 있음은 당연하다. 좋은 보르도 레드 와인이 50년도 거뜬히 버틸 수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글 : 정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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