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온난화로 와인 지도 변한다

보르도, 부르고뉴, 나파 밸리… 지고 ↓

브라질, 북유럽, 시베리아… 뜨네 ↑

On May 18, 2018



 

몇 년전 오스트리아 빈에 갔을 때 그곳 와인들을 마시면서 좀 놀란 점이 있다. 전통적으로 화이트 와인 생산지라 레드 와인은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의외로 맛있는 와인을 많이 만난 것이다. 레스토랑 서버들은 자랑스럽게 레드 와인을 권했고, 마셔본 결과 그럴 만했다.
 

물론 깊은 맛보다는 과일향이 풍부한 가벼운 와인들이었고 이름도 잘 모르는 현지 품종들이었지만 와인의 세계에서는 선입견과 상식을 무시해도 좋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화이트 와인의 천국인 독일에서도 요즘에는 우수한 레드 와인이 많이 생산되고 있다는 기사를 얼마 전 읽은 적이 있다. 젊은 세대가 업계에 진출하면서 품질이 크게 향상됐고, 오히려 화이트 와인보다 생산량이 많은데도 현지 소비가 워낙 많아 수출되지 않는다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앞으로는 이런 일이 좀 더 자주 일어날 것으로 보인다. 머잖아 세계 와인지도를 다시 써야하는 시대가 올 수도 있다.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지구 온난화 덕분이다.

수천년 동안 와인 지역은 남반구와 북반구 모두 위도 30~50도 사이에 위치한 지역들로 국한됐다. 양조용 포도의 재배는 적절한 온도, 강우량, 일조량 등 기후 조건이 갖춰져야 하는데 위도 50도보다 높은 지역은 너무 춥고 햇빛이 적고, 30도 아래 지역은 너무 덥고 가물거나 홍수가 나기 때문에 부적합한 것이다.
 

그런데 글로벌 워밍이 진행되면서 포도 재배에 적합한 위도가 계속 올라가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말하자면 현재 우수한 레드 와인 산지들은 가뭄과 기온 상승으로 전처럼 품질 좋은 와인 생산이 어려워지는 반면, 독일과 오스트리아처럼 날씨가 서늘한 화이트 와인 산지들에서도 레드 와인을 생산할 수 있게 되고, 심지어 너무 추워서 포도 재배가 완전 불가능했던 북구 지역에까지 청신호가 켜지게 된다는 것이다.
 

2012년에 기후변화가 세계 와인산업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한 연구가 있었다. 2050년의 기후 예측 정보와 포도품종 생리학 데이터를 사용한 이 연구의 결과는 놀라운 것이었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맛있는 레드 와인 산지들-보르도, 브루고뉴, 투스칸, 나파 밸리, 왈라왈라, 리오하, 두오로, 바로사 등지는 여름철 폭염과 가뭄이 잦아지면서 30년 후에는 지금과 같은 명성을 누리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업계는 “그럴 리가 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지만 이미 지구는 기후변화로 되돌릴 수 없는 이슈가 되고 있다. 캘리포니아에 몇 년째 계속되고 있는 가뭄도 그 일환으로 보이는데 문제는 기온이 상승한다는 것만이 아니고 기후 예측이 점점 더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뉴욕의 핑거 레이크 산지는 2014년 늦봄 갑자기 휩쓴 냉해로 포도나무 싹들이 모두 얼어버리는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서리 피해는 한해 수확뿐 아니라 다음해 수확까지 망치는 큰 손실이기 때문에 포도원에서는 새벽부터 난로와 온풍기, 스프링클러 등 갖가지 방법을 동원하여 이를 막는다. 그러나 갑자기 들이닥친 냉해는 어찌할 수가 없는 것이다.

기후변화에 따라 앞으로 와인 강국이 될 것으로 점쳐지는 나라들은 위도 30도 아래쪽으로 브라질, 인도, 케냐가 있고, 위도 50도 위쪽으로는 노르웨이, 스웨덴, 덴마크, 영국, 시베리아가 유력 후보군이다.
 

물론 쉽게 이루어질 변화는 아니고, 현재의 와인산지들도 손 놓고 있지만은 않을 것이다. 농경 테크놀러지가 날로 발전하고 있고 관개와 양조에서 새로운 대책도 나올 것이다. 아니면 드라이 농법으로 포도나무를 자연환경에 적응시키는 방법도 있고, 아예 척박한 환경에 잘 견디는 품종들로 바꾸는 방법도 있다.

 

한잔의 와인에도 지구온난화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으니 환경보호는 지금 우리 모두에게 시급한 문제다.

글 : 정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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