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세대 지휘자’ 개피건

“단원들을 신뢰할 때 마법 일어나죠”

On June 29, 2018


 

212년 역사의 스위스 최고(最古) 오케스트라이자 음악축전 ‘루체른 페스티벌’을 책임지는 명문 악단 ‘루체른 심포니’가 2년 만에 내한했다.

지난 24일 오후 5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고전과 낭만 시대의 대표 레퍼토리를 아우른며 피아니스트 베아트리체 라나(25)와 슈만 피아노 협주곡을 협연하고, 베토벤의 피델리오 서곡·브람스 교향곡 제1번 등을 들려주었다.
 

‘차기 마에스트로’로 통하는 제임스 개피건(39)이 지휘봉을 든다. 현시점 가장 주목받는 차세대 지휘자다. 클리블랜드와 샌프란시스코 심포니 부지휘자로 활동하며 미주지역에 이름을 알렸다. 2004년 숄티 지휘 콩쿠르에서 우승한 뒤 유럽 활동의 불을 지폈다.

2011~2012년 시즌부터 루체른 심포니의 상임 지휘자로 활동해왔다. 경쾌하고 창조적인 해석으로 이 악단의 기량을 끌어올렸다. 이로 인해 2022년까지 계약을 연장했다.
 
2년 전 루체른 심포니의 아시아 투어로 함께 처음 내한한 개피건은 e-메일 인터뷰에서 “공연과 한국 청중 모두에게 큰 만족감을 느낀 기억이 난다”고 돌아봤다.
 
“한국은 ‘아시아의 이탈리아’라는 생각이 들 만큼, 음악에 열광하는 나라라고 생각해요. 이번 내한은 전과 다르게 오로지 한국만을 위한 투어여서 더욱 기대하고 있습니다”라고 전했다.
 

개피건이 루체른 심포니의 상임 지휘자로 활동하면서 이 악단이 가장 크게 달라진 것은 레퍼토리 확대와 변화다.

개피건은 “브람스, 슈만, 모차르트, 하이든, 베토벤과 같은 고전 레퍼토리도 중요시하지만, 세계 초연 작품과 위촉 곡도 지속해서 연주하고 있어요”면서 “프랑스나 미국 곡처럼 자주 연주되지는 않는 레퍼토리도 계속 탐구해 나가고 있죠”라고 귀띔했다.
 
이번에 연주하는 곡들 역시 루체른 심포니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확인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개피건도 “특별한 메시지가 있는 프로그램보다 루체른 심포니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훌륭한 프로그램을 골랐습니다”고 자부했다.
 

 
“슈만 피아노 협주곡은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이나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처럼 화려한 작품은 아닙니다. 그러나 오케스트라와 피아노가 공유하는 특유의 친밀감을 가진 곡이죠. 섬세하고 진중한 피아니스트인 라나가 아주 잘 표현할 것입니다.”
 
브람스 교향곡 1번은 루체른 심포니와 특별한 관계가 있는 곡이라고 귀띔했다. “4악장에 나오는 유명한 알프호른(alphorn) 멜로디는 이 곡의 매력 중 하나다. 바로 그 알프호른이 스위스에서 태어난 악기죠. 루체른, 그리고 스위스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이 깊은 존경심과 사랑을 가진, 저희에게 아주 특별한 작품이에요.”
 
루체른 심포니와 2022년까지 계약이 연장된 만큼 비전이 궁금하다. 200년이 넘는 역사의 악단을 이끄는 만큼 전통과 미래의 조화에 고민도 클 법하다.
 
개피건은 “루체른 심포니와 같이 전통적인 악단과 오랫동안 함께하는 것은 제게 굉장한 영광이에요”라면서 “제 본래 목표와 같이 신선한 레퍼토리를 계속 탐구해 나갈 것이고, 더해서 관객과 관계 또한 좀 더 돈독하게 만들고 싶습니다”고 바랐다.
 

“루체른을 정기적으로 찾아주시는 청중과 저희가 해외에 나갈 때 마다 만나 뵙는 세계 곳곳에 퍼져있는 모든 청중까지도요!”라고 강조했다.

공연은 물론 레코딩 작업 또한 루체른 심포니를 더 많은 이에게 알리기 위해 필수적인 요소라고 판단했다. “이렇게 청중과 끊임없이 소통하면 전통과 미래의 조화도 자연스럽게 따라오지 않을까요?”라고 반문하는 이유다. “오케스트라의 미래, 레퍼토리의 미래뿐만 아니라 미래의 관객들까지 끌어안아야 하니까요. 그러니 앞으로도 계속해서 해나가야죠.”
 

젊은 지휘자인 개피건은 오케스트라 단원들과 소통할 때 인간적인 유머 감각과 음악적인 큰 그림을 놓치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다. 지휘자와 오케스트라가 가장 좋은 관계를 맺는 것에는 어떤 방법이 있을까.
 

개피건은 “솔직함과 열린 마음으로 단원들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격렬한 토론이나 리허설을 할지라도 유머 감각과 인간적인 면을 절대로 놓치지 않아야 해요. 우린 악기를 연주하는 기계가 아니라 ‘함께’ 음악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이기 때문이죠.”

가장 중요한 부분은 단원들이 무대에 올랐을 때 서로에게 귀를 기울이며 합을 맞추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서로에게 충분한 신뢰가 생길 때, 바로 그때 무대에서 마법이 일어나죠.”
 

개피건이 지휘봉을 잡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세계 여러 악단에서 그에게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지휘자로서 제 가장 큰 강점은 누구보다 열린 마음으로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단원들과 꾸준히 소통해 최고의 음악을 만들어내는 것 아닐까 합니다. 비결은 따로 없어요. 하하.”

글 : 이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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