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부동산’ 선 최 부사장/ 에이전트

위로, 그 한마디가 주는 힐링

On August 3, 2018


선 최 부사장은 “사람 좋아하고 매사 꼼꼼한 완벽주의 성격”이라고 본인에 대해 설명했다.

 

그녀의 사무실 창밖엔 녹음이 우거져있었다.

실내는 온통 나무색, 바닥도 나무로 된 마루바닥이다. 하우스를 사무실로 개조해 아늑한 느낌이 물씬한 이 곳은 LA 한인타운 6가에 위치한 ‘아주 부동산’. 6가를 따라 지나가다보면 눈에 띄는, 하얗고 깨끗한 외양의 건물이다.
 
마치 어느 집 안에 초대돼 커피 한 잔 마주한 듯한 느낌의 사무실에서 그녀를 만났다. 35년 경력의 부동산 에이전트인 선 최 부사장이다.
 
그녀는 미모의 대한항공 승무원에서 잘 나가는 부동산 에이전트로 변신한 특이한 이력을 갖고 있다. 이력에 대해서만도 할 이야기가 무궁무진했지만, 그녀는 덧붙여 신앙에 대해 얘기하고 싶어했다. 지금 그녀 인생의 중심이 신앙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터.
 
그녀의 증조부는 1919년 ‘3.1 만세운동’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민족대표 33인중 하나인 최성모 목사로, 충남 천안의 ‘천안읍교회’ 담임목사를 역임했다고 한다. 그러나 4대째 기독교 집안임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30대 초반까지만 해도 종교에 매우 냉소적이었다. “종교 가져도 나쁜 짓 하는 사람은 많기만 하더라”는 게 이유였다.
 

그녀는 일요일이면 마지못해 교회에 나갔고, 예배시간 내내 아무 감흥없이 앉아있었으며, 동생이랑 ‘예배 마치고 점심 뭐 먹을까’만 궁리했다. 그러던 그녀는 특별한 경험을 만난 뒤 달라졌다. “남은 삶은 다른 이에게 위로가 되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는 그녀.

‘위로’라는 단어는 신기하게도, 낱말을 읊조리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된다.


오래전 한국일보 기사에 난, 젊은 시절 그녀의 모습.

 

승무원에서 부동산 에이전트로

77년 대한항공에 입사한 그녀는 LA와 하와이, 뉴욕, 파리 등 해외 노선을 비행하는 승무원이었다.

지금이야 대한항공과 아시아나 항공이 ‘갑질 폭력’, ‘황제 경영’ 등으로 여론의 뭇매를 호되게 맞고있지만, 해외여행이 물꼬를 트던 70-80년대 당시는 항공사가 선망의 직업이던 시절. 초등학생때부터 스튜어디스를 꿈꿨던 그녀는 2,000명 중 7차 면접까지 거쳐 45명을 선발하는 치열한 경쟁을 뚫고 승무원이 됐다고 한다. 그렇게 원하던 직업을 갖고 원없이 비행기를 탔으나, 3년이 지나자 화려한 비행이고 뭐고 “기내식도 입에 대기 싫을 정도로” 마음이 떠났다.

82년 LA로 가족이민을 온 그녀는 미국 항공사에 들어갈까 하다가, 고교 선배의 권유로 84년 부동산 에이전트 자격증을 취득했다. 그녀의 나이 28세, 때는 바야흐로 한인들의 미국 이민이 봇물을 이루던 시절이었다.

사업체 전문으로 시작한 그녀에게 80년대 중후반 사우스 센트럴 지역은 말 그대로 ‘텃밭’이었다. 골목골목의 리커, 마켓, 패스트푸드점, 세탁소 등을 그녀는 훤히 꿰고있었다고 한다. 이민온 한인들의 생업 주종이 이 곳에서 이뤄졌고, 그녀는 젊었다. 거침없이 일했고 돈도 술술 벌어들였다. 키 166센티미터로 당시로선 제법 큰 키에 벤츠 420을 몰고다니는 미모의 에이전트. 패기도 넘쳤고 남부러울 것 없었다.

“당시 사우스 센트럴에서 마약 단속을 하던 마약전담반 경찰들이 오후 5시에 출근했어요. 저는 5시면 경찰서로 가서, 제 손님들이 산 리커의 영업종료시간을 10시에서 12시로 연장해달라며 청원을 했지요. 처음엔 단호하게 거절하던 경찰들이, 제가 밤 12시까지 이런 얘기, 저런 얘기하면서 죽치고 있으니 나중엔 두손 들고 오케이 싸인을 해주기도 했어요. 지금은 있을 수 없는 일이겠지만 그 때는 그런 일화도 있었네요. (웃음)”


신앙을 만나다

잘 나가던 그녀를 ‘무릎꿇게’ 한 건 뜻밖의 사건이었다.

88년 부모님과 가족을 위해 오렌지카운티에 방 5개짜리 큰 집을 구매한 그녀는, 내부 수리를 의논하기 위해 담당 관계자와 만났다. 처음 만난 여자인데 그녀에게 “기도 좀 해드려도 될까요?” 하더란다.

분명 종교에 냉소적인 그녀였는데, 평소 같으면 그런 제의에 자리를 피하던 그녀였는데.

“저도 모르게 ‘네!’하면서 더러운 카펫 바닥에 무릎을 꿇었어요. 같이 손잡고 통곡하며 기도했는데, 나중에 보니 한시간이 넘게 했더라고요. 저도 제가 왜 그랬는지 이해가 안 돼요. 한참 울고나니, 마음이 한없이 위로받은 느낌이었어요. 아마 다른 분들도 이성적으론 제 이야기가 이해되지 않으시겠지만, 저에겐 인생에서 결정적인 경험이었어요.”

그렇게 그녀는 신앙의 길로 들어섰다.


“유행이에요!”

그녀는 당시의 자신에 대해 “재수 없는 스타일이었다”고 표현하며 웃었다. 

태도가 자신만만함을 넘어 오만했고, 같이 일하는 직원들에게도 워낙 까칠해서 직원들이 그녀를 어려워했다고 한다.

“심지어 직원이 우연히 제 얼굴에 뭐가 묻은 것을 보고 아주 조심스럽게 ‘코에 뭐가 묻었다’고 말해주면, 제가 새침하게 ‘유행이에요!’라고 대답할 정도였어요. (웃음) 그러니 직원들이 얼마나 황당했겠어요. 콧대 높고 교만이 하늘을 찔렀던 거죠. 그러던 제가 그 특별한 체험 덕에 무너져서 펑펑 운 뒤로, 많이 달라졌던 것 같아요. 겸허해졌다고나 할까요.”


부동산 에이전트는 나의 천직

이후 92년 4.29 폭동과 노스리지 지진, 부동산 폭락을 거치며 그녀에게 시련이 닥쳤다.

돈 벌어 투자했던 부동산도 날아갔다. 그녀는 “(신이) 10년간 나에게 주신 것을 다 거둬가셨다”고 했다.

그러나 다행히 신앙의 힘은 공고했고 그녀는 차근차근 이겨냈다. 오랜 시간 부동산 업계에 종사하면서 윤리에 위배되는 경우도 많이 봤으나, 2002년 그녀의 가치관과 맞는 ‘아주 부동산’에 정착하면서 안정감도 커졌다고 한다. 35년간 11개의 탑세일즈 상을 수상했고, 잃었던 재산도 차츰 다시 찾았다. 주로 아파트, 샤핑센터 등 인컴 프라퍼티와 커머셜을 매매, 관리하며, 경력이 쌓여 고객이 먼저 리스팅을 주는 경우가 많다고.

이제 그녀는 매일 아침 30-50분간의 묵상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남부럽지 않게 잘 나가기도 했고, 지독한 시련도 겪어보며 단련된 그녀에게 묵상은 평안을 준다고 했다.

“제가 승무원이란 직업은 결국 싫어하게됐지만,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는 성격 덕에 부동산 에이전트 일은 천직이었어요. 35년간 정말 즐겁게 일했고 앞으로도 최소 70세까진 하려고요. 그리고 무엇보다 제가 그런 체험을 했듯, 남에게 위로가 되는 사람으로 남은 생을 살고 싶습니다.”



‘아주 부동산’ 선 최 부사장
전화 : (213)610-8000

주소 : 3701 W. 6th St. L.A.

글 : 김수현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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