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써니브로우’ 써니 박 대표

전화위복(轉禍爲福)
내 인생

On September 7, 2018

비온 뒤 더 단단해졌다는 써니 박 대표.

 

‘전화위복’(轉禍爲福)이라는 말이 있다.

화가 바뀌어 오히려 복이 된다는 뜻이다. 끊임없는 노력과 강인한 의지로 힘쓰면, 불행을 행복으로 바꿀 수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반영구화장 전문 ‘써니브로우’(Sunnybrow)의 써니 박(37) 대표는 자신의 인생에 대해 전화위복이라 표현했다. 10대 후반과 20대 초반 진로가좌절돼 ‘앞이 막막했던’ 시기를 딛고 길을 모색해, 30대 후반인 지금은 자신의 직업에 120% 만족하기 때문이다.

그녀의 적성에 잘 맞으면서 성장 가능성이 높고,수입이 괜찮고, 결혼과 육아를 병행하기에 좋은 분야라서 “내 인생의 방향을 치열하게 고민했던 그 때의 힘든 시기가 오히려 고맙다”는 그녀.
 
여리여리해보이는 그녀는 알고보니, 당찬 꿈을 꿔왔고 지금도 꾸고있는 씩씩한 면모를 가졌다.
 

친구들 피했던 20대 초반 그녀는 미대 진학을 목표로 입시미술을 하던 강남 8학군 학생이었다.

인테리어 디자이너가 되고싶었던 그녀는 고교 2학년이던 97년 IMF 당시, 아버지의 사업이 사기를 당하면서 암초에 부딪혔다. 입시미술에 대한 부모님의 지원이 끊겼고 그녀는 성적에 맞춰 아무 과에나 가야하는 상황이 됐다.
 
미대 외엔 생각지도 않았기에 그녀는 앞이 막막했다. 다른 전공으로 대학가기도 싫었고, 부모님에 대한 반항감에 대입 원서도 넣지 않았다. 대학진학을 포기한 그녀는 명품 멀티샵에 취직해 매니저로 일했지만, 내성적인 성격이라 언변도 좋지 않았고 적성에 맞지 않아 얼마 안가 그만뒀다.
 
한창 예민할 10대 후반 그리고 푸릇푸릇한 청춘의 꿈에 부풀어있을 20대 초반은 이처럼 그녀에게 암울한 시기였다.
 
설상가상으로 함께 미대 준비를 하던 그녀의 친구들은 대학에 진학했을 뿐만 아니라 대부분 미국, 영국으로 유학까지 떠났다.
 
“길에서 친구들을 만나면 저도 모르게 피해다닐 정도였어요. 제가 그토록 원했던 미대에다 유학까지 간 친구들 앞에 서기엔, 제가 너무 자존심이 상했거든요. 가족이 원망스럽고 학위는 없고…‘내가 앞으로 뭘 할 수 있을까’ 고민이 많았죠.”
 
생각해보라. 세상이 온통 아름답게 보일 인생의 황금기에, 어깨를 움츠리고 친구를 피했던 위축된 청년의 모습을.

 


 

미용업계에서 찾은 적성
 
그러던 그녀가 친구의 권유로 ‘네일’을 만난 건 26세 때, 2000년대 초반이었다. “당시 네일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낮았고, 미술하던 내가 어떻게 네일을 하나” 싶어 처음엔 내키지 않았다고.

 

그런데 막상 시작해보니 뜻밖에도 적성에 잘 맞았다. 네일이 ‘작은 손톱안에 그리는 아트’란 게 맘에 들었다. 그녀는 직원 5명을 두고 네일과 스킨케어를 같이 하는 토탈 케어 샵을 3년간 운영하는가 하면, 미용직업학교 강사로 서는 등 신나게 일했다. 그러다가 “직원 월급 주고나면 남는 게 별로 없어서” 나 홀로 할 수 있는 비즈니스를 찾게 됐고, 눈썹과 아이라인, 입술, 헤어라인 등을 다루는 반영구 화장에 눈을 돌렸다. 압구정동에서 반영구 화장 업체를 운영하면서 결혼, 출산, 육아를병행했다.
 
“네일이 손톱을 캔버스 삼는다면, 반영구 화장은 얼굴을 캔버스 삼는 분야에요. 또 이 분야는 공간과 렌트 대비 수익이 높고, 예약 위주로 운영돼 시간 운용이 편하기 때문에 육아와 함께 하기에 아주 좋은 비즈니스고요. 제가 딸이 둘인데 둘 중 하나는 이 분야를 시키고 싶을 정도에요. (웃음)”

 
연륜 따라 변한 성격도 한 몫
 
적성과 현실성을 떠나 뷰티 관련 업계도 다양한 사람 상대라는 건 여전한데, 멀티샵 근무시절보다 편안해진 이유는 뭘까.
 
“전에는 제가 내성적이고 말 수 적은 성격이었는데, 아이 낳고나서 달라진 것 같아요. 보통 시술하는 한 시간 반 동안 한 손님과 대화하다보니, 미국에 오게 된 이야기부터 주부의 고충, 자녀 키우는 일상 등을 공유하게 되더라고요. 연륜이자 아줌마가 돼가는 자연스런 흐름이죠 뭐. 하하.”
 
결혼 후 그녀는 남편과 본인이 원해 미국 이민을 선택했다. 한국의 교육에 회의가 들었고 성공해도 각박해지기 쉬운 환경이라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민 후 그녀는 시장조사와 네일을 거쳐 반영구 화장 샵을 차렸는데, 최근 1년 반새 한인 업계에 반영구 화장 비즈니스가 엄청 늘었다고 그녀는 전한다.

 
88세 할머니까지…보람 큰 직업
 
반영구 화장의 손님은 여자가 대부분이나 20% 가량이 남자이고, 남성 손님이 늘고있는 추세다. 연령은 20대부터 80대까지 다양하다.
 
“양로병원에 사시는 88세 할머니인데, 매일 아침 눈썹 그리는 게 귀찮아서 왔다고 하시더라고요. 고령이라도 예뻐지고 싶은 마음은 다 같은 거겠죠. 엄마가 대학생 딸을 데리고 오기도 하고, 부부가 같이 오거나, 한 여자분이 왔다가 네 자매를 다 이끌고(?) 오는 경우도 있어요.”
 
박 대표에 따르면 반영구 화장 중 가장 만족도가 높은 시술은 헤어라인이다. 출산 후 머리가 빠졌거나, 원형 탈모가 왔거나, 이마가 넓은 사람들이 헤어라인을 시술 받은 후 “너무 기뻐 울기도” 한다.
 
또 눈썹 시술은 인상이 달라질 정도로 사람을 확 바꾸기 때문에, 그녀 또한 큰 보람을 느낀다고.


 
훗날 교육기관 열고싶어
 
그녀는 반영구 화장에선 시술 기술도 중요하지만 디자인이 가장 기본이라고 말한다. 얼굴에 디자인 펜슬로 아웃 라인을 딴 뒤 디자인을 잡고, 마취 후 라인을 따라 시술한다.
 
디자인을 그릴 때 손님의 표정과 눈썹을 움직이는 습관까지 관찰하고, 피부톤, 피부타입, 머리색에 따라 색상을 결정하기 때문에 눈썰미와 관찰력이 매우 중요하다.
 
“눈썰미 외에도 손재주, 그리고 아주 꼼꼼한 완벽주의 성격과 책임감이 필요합니다. 사람 얼굴을 대하는 일이기 때문이죠. 또 새로운 재료와 기술, 트렌드를 따라가야 하기에, 세미나가 있으면 열일 제쳐두고 가서 듣는 열의도 있어야하고요. ‘K뷰티’ 업계가 성장하는 만큼 꾸준히 자기 실력을 연마한다면 할리웃이나 중국인 등 비한인 대상까지 시장을 넓힐 수 있어요.”
 
아담한 그녀만의 작업실에서 그녀는 높은 성장 가능성을 그리고 있었다. 한 때 좌절과 위축을 겪었지만, 이제 그녀는 당당히 자신의 직업을 사랑한다.
 

“돌아보면, 제가 대학 학위를 안 땄으니 성공에 대한 포부를 더 크게 가졌던 것 같아요. 전화위복이 고맙고 처음에 네일 권해준 친구에게도 늘 고맙다고 말해요. 제가 워낙 만족스러워하니, 미대 가고 유학갔던 친구들도 이제는 저를 부러워하고요. 경륜 쌓아서 훗날 반영구 화장 교육기관을 설립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웃음)”


 

‘써니브로우’ 전화 : (213)274-4927

주소 : 306 N. Western Ave. L.A.

글 : 김수현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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