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찌와 와인이 만났을 때, 단팥의 사포닌 성분 ‘쓴맛’ 유발


 

와인 테이스팅에서 팔레트가 얼마나 민감한가를 다시 한번 느끼게 해주는 ‘사건’이 있었다. 바로 얼마전 몬터레이 와인 컨트리의 시음 여행 때 있었던 매우 흥미로운 경험이다.

맨 처음 찾아간 모건(Morgan) 와이너리의 테이스팅 룸에서였다. 모건은 이 지역의 대표적인 와인 브랜드인데다가 오래전에 피노 누아를 아주 맛있게 마셨던 기억이 있어서 일부러 첫 방문지로 선택했었다. 그러므로 5시간 넘게 운전하여 도착했을 때 와인에 대한 기대감이 얼마나 컸을지는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처음 따라준 샤도네부터 맛이 이상했다. 한 모금을 머금고 음미할 때는 괜찮은데 목 뒤로 넘기면서 쓴맛(bitterness)이 확 느껴지는 것이었다. 와인에서 그렇게 약처럼 쓴맛을 느끼는 일은 거의 없기 때문에 굉장히 이상했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함께 시음한 친구도 똑같이 놀란 표정을 지어보이며 “뒷맛이 쓰다”고 했다. 

서버가 또 다른 샤도네를 따라주었는데 이것 역시 뒷맛이 썼다. 그리고 다음에 마신 몇 종류의 피노 누아도, 시라도 계속 그랬다. 너무 이상해서 서버에게 이런 쓴맛이 어디서 나온 것인지 물었으나 시원한 답변을 들을 수 없었다. 솔직히 말하면 그때의 실망이 너무 커서 몬터레이 와인산지 전체에 대한 첫 인상마저 심각하게 나빠질 뻔했을 정도였다.         

거기서 나와 다음번 간 곳이 버나두스(Bernadus)였는데 거기서도 처음에는 쓴맛이 살짝 느껴져서 이게 이 지역 테루아의 특성인가보다 하는 실망이 스쳐갔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와인들이 점점 맛있어졌고, 결과적으로 흡족한 시음을 마치고 나왔다. 그리고 다음날부터 다닌 곳은 모두 아주 대단히 훌륭해서 다들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3일간의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친구들과 즐거웠던 경험을 이야기하는 동안 우리는 다같이 모건에서는 왜 와인이 썼을까를 궁금해 했다. 그것도 한두 종류가 아니라 모두 다 그랬으니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다시 만났을 때 한 친구가 의외의 가설을 제시했다. 혹시 그 원인이 우리가 거기 도착하기 전에 먹었던 모찌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였다. 첫날 올라가면서 속에 단팥과 호두가 잔뜩 들어있는 왕 모찌를 다 같이 요기삼아 먹었던 생각이 났다.

처음에는 말도 안 된다고 반응했다. 그걸 먹고 나서 몇 시간이 지난 후에 시음했는데 그 맛의 영향이 남아있을 리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완전히 말도 안 되는 이야기는 아닐 수도 있다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 모건은 아주 좋은 와이너리인데 그 와인만 모두 쓰게 느껴진 데는 우리 입맛에 공통적인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는 공감이었다.

그래서 어느 날 실험을 해보기로 했다. 여행 다녀온 지 꼭 3주가 되던 주말에 영화를 보러 모였을 때 함께 갔던 3명을 포함해 4명이 영화 보기 전에 모찌를 조금씩 나누어 먹었다. 그리고 나서 영화를 보았고, 약 2시간 후에 식당에서 런치를 하면서 소비뇽 블랑을 한병 시켰다. 

그래서 어떻게 됐을까? 짜잔~~ 놀랍게도 와인에서 또 다시 쓴맛이 느껴졌던 것이다. 그때처럼 아주 강하지는 않았지만 충분히 다함께 동의할만한 팔레트의 반응이었다. 우리는 너무 놀라는 한편 어려운 문제를 해결했다는 기쁨이 넘쳐흘렀다. 그 친구에게 모든 찬사와 영광을 돌린 것은 물론이다.

팥의 어떤 성분이 와인의 산도와 당도에 영향을 미쳤는지는 잘 모르겠다. 사포닌 성분이 쓴맛을 냈을 수도 있고, 팥 특유의 텁텁함과 팥소의 엄청 단맛이 와인의 산도와 상충되면서 섬세한 시음을 방해했을 가능성이 크다. 한 가지 풀리지 않는 의문은 몇 시간이 지났는데도 혀에 그 영향이 남아있을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와인의 맛이란 이토록 미묘한 것이다. 우리가 생각지도 못했던 음식의 맛이 팔레트에 오래도록 남아있다가 와인을 마실 때 영향을 미칠 수도 있으니, 그동안 맛보았던 와인들이 사실은 그때 내 팔레트의 상태에서 느낀 것일 뿐, 원래는 다른 맛이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든다. 

글 : 정숙희 기자
다른 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