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디 머큐리로 완벽 변신 한 라미 말렉




‘보헤미안 랩소디’(한국 10월 31일 개봉)에서 1970년대와 1980년대에 걸쳐 세계적 인기를 모았던 영국의 록밴드 ‘퀸’의 리드 싱어 프레디 머큐리(본명 화록 불사라)로 나온 눈이 큰 라미 말렉(37)은 생김새가 머큐리와 많이 닮았다. 머큐리는 이란계이고 말렉은 이집트계다. 최근 베벌리힐즈의 포시즌스호텔에서 인터뷰를 가진 말렉은 차분하고 겸손하면서도 영화에서처럼 에너지로 가득했는데 미소를 지어가며 질문에 자상하고 지적으로 대답했다. 말렉은 영육을 불사르며 연기하고 노래를 불러 오스카상감이라는 말을 듣고 있다. ‘퀸’의 히트곡들로는 ‘보헤미안 랩소디’ ‘위 아 더 챔피언즈’ 및 ‘위 윌 록 유’ 등이 있는데 프레디는 1991년 에이즈로 45세로 사망했다.     


프레디는 돈보다도 자기의 예술적 가치를 지키기 위해 음반 취입도 마다했는데 당신은 배우로서 자신의 예술적 가치를 어떻게 추구하는가.

그는 자신의 비전을 포기하지 않은 사람이다. 그 것은 그가 어렸을 때 영국으로 이민,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애를 쓴 경험과도 관계가 있다고 본다. 그래서 그는 자기가 하고픈 말이 있으면 그 것을 서슴없이 밝혔다. 나도 마찬가지다. 이 영화의 역이 내게 제공됐을 때 나는 ‘그래 할 수 있다. 나의 100%를 바쳐 해낼 것이다’라는 각오로 임했다.

‘퀸’이 아프리카 빈민들을 위한 라이브 에이드 쇼에 나와 노래를 부르는 장면은 정말 감동적인데 그 장면을 찍을 때의 느낌은.

결코 프레디를 100% 재현할 수는 없었다. 그 장면을 위해 무대에 나왔을 때 하늘에 뜬 기분이었다. 프레디 역을 맡은 내가 그에게 진 빚을 갚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프레디도 공연했을 땐 긴장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그런 긴장을 참으며 밖으로 보여주지 않고 청중을 사로잡았듯이 나도 열심히 그를 따라했다.

동성애 장면을 찍을 때 어떤 느낌이었는가.

그 부분에 어떻게 접근해야 할 것인가를 놓고 매일같이 고민했다. 그는 동성애에 대한 차별이 극심할 때 자신의 성적 기호를 알게 됐는데 프레디의 얘기이니만큼 사실에 충실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동성애 기호를 깨닫기 전에 메리 오스틴이라는 여자와 좋은 관계를 가졌는데 동시에 동성애자로서도 아름다운 삶을 가졌다. 양성애자인 셈이다. 그러나 우린 무엇보다 그를 인간적으로 그리려 했다. 그가 훌륭했던 것은 동성애자에 대한 악조건 속에서도 자신을 떳떳이 지켰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는 무대에서 노래를 통해서도 자신의 정체를 숨김없이 드러냈다.

‘퀸’이 다른 밴드와 다른 점은 무엇인가.

우선 그들의 노래는 듣자마자 기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위 아 더 챔피언즈’와 ‘위 윌 록 유’ 같은 노래들은 아주 간단해 금방 따라 부를 수 있어 삽시에 전 세계적으로 퍼진 것이다. 그리고 가사들도 사람들이 하고픈 말들이다. 그래서 청중이 그들의 노래를 함께 부르면서 자신의 삶과 정체를 생각할 수가 있다. 그들의 음악에는 자유가 있는데 이것이야말로 시간을 초월하는 것이다. 
             

이 역으로 당신이 변한 점이라도 있는지.

난 크게 변했다. 제작자를 비롯해 각 부서의 사람들이 온갖 정성을 다해 영화를 만드는 것을 보면서 나는 무언가 특별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난 작품에 나올 때마다  내 한계를 밀어붙이곤 하는데 이번은 그 보다 한 단계 더 높이 나를 재촉했다. 무언가 공동체가 하는 특별한 일이라는 것과 함께 작품에 대해 막대한 신뢰감을 가질 수 있었다. ‘퀸’의 얘기를 사실대로 그려 그들을 모르는 젊은 세대들에게 왜 우리 세대가 ‘퀸’을 사랑했는지를 알려주려고 했다.

영화를 보면서 프레디가 죽음의 침상에서 무슨 음악을 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났는데.

그가 죽음의 침상에서 무슨 음악을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프레디는 청년시절부터 지미 헨드릭스와 데이빗 보위를 사랑했다. 또 아레사 프랭클린도 좋아했는데 그는 특히 오페라를 사랑했다. 그래서 그는 얼마 전 사망한 스페인 태생의 프리 마돈나 몽세라 카바예와 함께 오페라 앨범도 취입했다. 밴드의 다른 멤버들이 주말에 록밴드 공연을 보러 갈 때면 그는 파바로티 공연에 갔다. 그가 사랑하는 또 다른 가수는 라이자 미넬리다. 둘이 노래하는 제스처가 비슷하지 않은가.

영화가 완성 된 뒤 본 느낌은.

영화를 보면서 무언가 특별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느끼면서 감정이 복받쳤다. 프레디가 보고 자랑스럽게 느낄 수 있다면 하는 생각이다. 이 영화에 대해 큰 자부심을 느낀다.

역을 맡을 때마다 어떻게 변신하는가.

나는 도전하기를 좋아한다. 난 늘 날 가장 두렵게 만드는 역을 맡으려고 해왔다. 프레디 역이야 말로 내가 한 역 중에서 가장 두려운 것이다. 그래서 이 역을 맡고서 그 압박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프레디를 록의 신으로 생각하지 않고 하나의 투쟁하는 인간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그의 영혼에서 나온 노래 가사들을 모두 적은 뒤 그 것을 외우면서 그에게 접근해 갔다.    

프레디 역을 맡으면서 무엇을 배웠는가.

그는 규격화되기를 거부했다는 것이다. 일정한 딱지가 붙는 것을 거절한 것이다. 그리고 자기가 원하는 대로 자기를 완성해 간 사람이다. 그래서 참 사랑을 꾸준히 찾아가다가 그의 파트너인 짐 허튼을 찾게 된 것이다. 그는 무대에선 그 누구와도 비견할 자가 없지만 사생활에선 인간의 기본적 필요를 찾으려고 투쟁한 사람이다. 이런 것들을 난 배웠다.      


 

개인적으로는 무엇을 사랑하는가

연기를 사랑하고 특히 이 역을 사랑한다. 그리고 나와 공연한 배우와 호흡이 잘 맞았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이는 영화에서 자기 애인으로 나온 루시 보인턴과 데이트하는 관계라는 것을 암시한다.)

어려운 프레디역을 맡은 후유증이라도 있는지.

다른 역들은 촬영이 끝나면 그와 관계를 끊게 되기를 원하기 마련인데 프레디와는 결코 떨어지고 싶지 않다.

역을 맡고나서 전보다 노래와 춤을 더 잘 부르고 추게 됐는가.

샤워 하면서 노래를 부르고 춤 실력도 다소 늘었다. 프레디의 춤 스타일을 좀 닮았다고 본다. 프레디는 이제 내게 있어서 결코 헤어질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     
                

라이브 에이드 쇼 장면을 위해서 얼마나 연습했는가.

촬영이 있기 전까지 매일 한 곡씩 연습하고 마지막 날엔 공연할 전곡을 모두 연습했다. 노래를 부를 때 우리 주위를 둘러싼 카메라들이 위아래 좌우로 움직이는 것을 보면서 피가 솟구쳤다. 그리고 청중으로 나온 많은 엑스트라들도 우리를 흥분시켰다. 중간 컷 없이 계속해 공연하는 장면을 찍었는데 격정적인 노래와 청중들의 환호성으로 인해 내 몸 안에서 신기한 일이 벌어지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배우가 천직이라고 생각하는가.

어렸을 때부터 머리 속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따라하지 않으면 내 미래가 순탄치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 소리란 어디선지 온 어떤 배역이 말하는 소리였다. 13세 때 연극에 나와 부모님이 보는 앞에서 대사를 외웠을 때 내가 다른 사람으로 변신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부모님도 나의 변신을 나와 함께 느끼셨다고 한다. 그 때 이런 변신이 주는 느낌으로 내 생을 이끌어갈 수 있다면 평생을 그런 일을 하면서 살아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당신이 피아노를 치면서 노래를 부르는데 직접 노래를 불렀는가 아니면 프레디의 노래인가.

피아노는 이번에 생전 처음 쳐보는 것이다. 악기를 연주하고 노래하는 것을 위해 고된 훈련을 했다. 오전 11시에는 피아노 연습을 하고 오후 1시에는 노래 연습을 하고 오후 3시에는   공연할 때의 동작 연습을 했다. 감독은 내가 노래를 안 불러도 된다고 했지만 이런 역을 맡고서 어떻게 노래를 안 부를 수가 있겠는가. 그래서 컨서트 장면에서 나의 노래 실력을 100% 동원했다. 그러나 영화 속 노래의 대부분은 프레디의 것이다.

나중에 ‘퀸’의 노래를 들을 때 “아이 지겨워”라고 하겠는가 아니면 여전히 사랑하겠는가.

난 촬영이 끝난 뒤에도 몇 달 동안 ‘퀸’의 노래만 들었다. 그렇게 그들을 사랑하게 됐다. 특별히 프레디에게 각별한 감정을 느껴 그들의 노래를 듣고 또 들었다.

감독 브라이언 싱어가 성질을 부려 촬영 종료 얼마 전에 해고됐는데 그와의 관계는 어땠는가.

정열 덩어리인 사람에 관한 영화여서 세트의 분위기도 열기로 가득했다. 감독과 내가 서로 나름대로 ‘퀸’과 프레디를 해석하려고 하면서 우리의 열정이 어느 정도 충돌했던 것은 사실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내 뜻을 지켜나간다는 것은 큰 도전이었지만 나는 어려움을 견디면서 내 나름대로 그를 충실히 재현했다고 믿는다. 
                     

                    
글 : 글 박흥진, 사진 박흥진, Bohemian Rhapsody 웹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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