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이냐 혁신이냐
구세계 vs 신세계의 차이

와인의 세계는 크게 둘로 나뉜다. 구세계(Old World)와 신세계(New World)가 그것이다. 구세계는 수천년부터 와인을 생산해온 유럽 일대의 지역을 말하고, 신세계는 와인 역사가 일천한 유럽 외의 모든 지역을 일컫는다.

와인은 16세기까지 서구 유럽 문화권에서만 마시던 음료였다. 그러던 것이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이후 유럽열강이 너도나도 식민지 개척에 나서면서 와인도 세계각지로 전파되었다. 식민지에 파송된 선교사들은 예배를 위해 포도주가 필요했고, 유럽에서 온 이민자들도 식탁에 와인이 필요했기 때문에 포도 묘목을 가져다 심은 것이 신세계 와인 역사의 시작이다. 

캘리포니아를 비롯해 칠레, 아르헨티나 등 남북아메리카에 드넓은 와인산지가 형성된 것은 순전히 선교사들과 이민자들의 공로다. 호주, 뉴질랜드, 남아공화국 역시 식민지시대에 와인이 전해진 신세계국가들로, 미국을 제외하고는 모두 남반구에 위치해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한편 이들 외에도 최근 와인 양조에 뛰어든 일본, 중국, 멕시코 등의 나라들도 신세계로 분류돼야 할 것이다. 글로벌 와인문화가 정착됨에 따라 포도 재배가 가능한 국가들은 너도나도 와인산업에 뛰어들고 있어 신세계 영역은 계속 확장되는 추세다.

구세계 와인이 수천년의 역사를 가진 데 비해 신세계 와인의 역사는 길어야 300년 정도밖에 안 된다. 그것도 시작이 그렇다는 것이지 와인산업이 지금처럼 활성화된 것은 1970~80년대부터이기 때문에 실제로는 역사가 40~50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발주자 신세계는 놀랄만한 성장을 거듭해 빠른 시간에 질 좋은 와인을 대량생산하기에 이르렀다. 오늘날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구세계 와인은 값싸고 맛있는 신세계 와인들의 도전에 위기감을 느낄 정도로 세계 와인시장의 판도가 크게 달라졌다.

그 배경에는 전통과 혁신의 차이가 있다. 유럽의 와인산지들은 오랜 세월 지켜온 전통적 양조방식을 고수한다. 지역마다 포도품종과 재배방식, 양조법과 숙성기간 등이 정해져있고, 이 기준에 맞아야만 등급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새로운 시도를 할 수가 없다.

반면 신세계 와인산지들은 자유롭게 새로운 기술과 양조법을 도입하고 실험할 수 있다. 지역에 따라 최소한의 규정이 있을 뿐 법적으로 규제하는 등급 시스템이 없기 때문에 와인메이커의 의지에 따라 창의적으로 와인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단시간 내에 구세계 와인의 수준을 따라잡을 수 있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또 하나 중요한 차이는 기후 조건에 따른 빈티지의 차이다. 유럽은 날씨가 변덕스러운 탓에 해마다 기온, 강수량, 일조량 등이 다르고 그 변화가 와인 양조에 큰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수확연도인 빈티지가 맛과 가격에 결정적인 변수로 작용하게 된다. 

반면 캘리포니아를 비롯한 신세계 지역은 기후변화가 크지 않아서 매년 거의 비슷한 날씨가 지속되기 때문에 빈티지에 따른 차이가 크지 않다. 맛이 일정 수준으로 보장되는 것이다. 

구세계와 신세계의 차이는 또 있다. 유럽은 지역마다 재배하는 품종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레이블에 품종 이름을 쓰지 않고 생산자나 지명을 적어넣는다. 보르도에서는 카버네 소비뇽 위주의 레드와인을, 부르고뉴에서는 샤도네와 피노 누아를, 루아르에서는 소비뇽 블랑을, 토스카나에서는 산지오베제를 재배한다는 사실을 다들 알고 있기 때문에 굳이 쓸 필요가 없는 것이다. 

반면 신세계에서는 품종과 지역의 연계성이 적고 한 지역에서 여러 품종을 재배하는 일이 보편적이다. 나파 밸리에서 카버네 소비뇽, 샤도네, 피노 누아, 시라, 소비뇽 블랑을 모두 심고 있는 것이 좋은 예다. 따라서 품종이름을 레이블에 이를 밝히는 일은 당연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신세계와 구세계의 경계는 점차 허물어지고 있고 차이도 줄어들고 있다. 와인의 글로벌리즘에 따른 당연한 결과다. 구세계도 새로운 기술들을 적극 수용해나가고 있고, 신세계는 구세계 와인에 못지 않은 깊이와 전통을 형성해가고 있는 것이다.

글 : 정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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