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런을 내주더라도
볼넷은 없다

1994년 미국에 진출한 박찬호는 ‘코리안 특급’으로서 손색없는 구위를 과시했다. 95마일 이상의 빠른 볼로 ‘닥터 K’의 이미지를 굳혔다. 한인들은 박찬호가 등판하는 날 다저스테디움을 찾으며 열렬히 그를 응원했다. 

박찬호가 야구계를 떠난 뒤 한인 팬들의 허전한 마음을 달래준 게 ‘몬스터’ 류현진이다. 하지만 2013년에 빅리그에 데뷔한 류현진은 어깨 수술로 발목이 잡혔다. 어깨 수술 외에도 사타구니 부상(Groin strain) 등 해마다 부상자 명단(Injured List)에 등재됐다. 스포츠네트 LA의 오렐 혀샤이저 해설자는 “류현진은 부상이 없을 때 언히터블급의 투수다”고 평했다. 박찬호는 다저스 시절 한 차례도 부상자 명단에 오른 적이 없다. 

KBO 리그 한화 이글스에서 한 시즌 한솥밥을 먹은 박찬호와 류현진은 스타일이 좌우완만큼이나 다르다. 박찬호는 힘으로 윽박지르며 삼진을 낚는 ‘닥터 K’다. 류현진은 경기 운영을 노련하게 하는 스타일이다. 한마디로 마운드의 능구렁이다. ‘야구 9단’ 이라는 얘기가 그래서 나왔다. 박찬호는 2000, 2001년 2년 연속 한 시즌에 삼진 200개 이상을 작성한 바 있다. 대단한 수치다. 류현진은 2013년 데뷔 때 154개가 전부다. 

그러나 류현진은 제구력에서 박찬호를 크게 능가한다. 특히 어깨 수술 후 볼넷 허용이 눈에 띄게 줄었다. 지난해 15경기 선발 등판에서 볼넷을 주지 않은 게 7경기다. 올해도 초반 5경기에서 3경기에 볼넷이 없었다. 박찬호와 다른 점이다. 

지난 달 26일 친구 강정호와 맞붙은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전에서 시즌 최다 투구(105), 최다 삼진(10)을 작성하며 시즌 3승을 거뒀다. 다저스 출입기자들은 풀카운트에서도 볼넷을 내주지 않는 류현진의 투구에 혀를 내둘렀다. 볼넷 허용이 없는 피칭의 배경을 물었다. “초등학교 때 감독님이 홈런을 맞더라도 볼넷은 주지 말라고 했다”고 해 기자실이 빵 터졌다. 어린 시절 감독의 말을 금과옥조로 새기면서 공을 던진 게 ‘몬스터’의 힘이 된 것이다. 

류현진은 직구 구속에서 박찬호와 큰 차이를 보인다. 자연히 안타 허용이 많다. 그러나 상처는 적다. 이유는 바로 볼넷이 없기 때문이다. 대량실점의 한복판에는 늘 볼넷이 있게 마련이다. 타자의 무임승차를 원천적으로 봉쇄하겠다는 게 류현진 피칭의 키포인트다. 

야구는 기록의 게임이다. 예전에는 투수 능력의 잣대를 파악하는데 피안타율이 참고 대상이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WHIP를 눈여겨 본다. 투수가 한 이닝에 안타와 볼넷을 얼마나 허용했는지를 알 수 있는 기록이다. 피안타율이 낮은 투수는 빠른 볼의 소유자들이다. 노히트노런을 7차례나 작성한 놀란 라이언은 이 부문 역대 1위다. 강속구의 대명사인 그는 9이닝 기준 평균 6.55개의 안타를 허용했다. 2위는 현역 클레이튼 커쇼로 6.72, 3위 샌디 쿠팩스 6.79다. 

MLB 17년 동안 1993이닝을 던진 박찬호는 9이닝 기준 8.5개의 안타를 내줬다. 현역 류현진은 4월30일 을 기준으로 585이닝에 8.7개다. 박찬호의 WHIP는 1.396이다. 이닝당 1.39명의 주자를 허용한다는 의미다. 류현진은 1.207이다. 9이닝 기준 볼넷 허용은 박찬호 4.1, 류현진 2.2다. 제구력은 류현진이 위다. 의외로 9이닝 삼진수는 류현진 8.2, 박찬호 7.7개다. 

WHIP 외에 주목할 기록이 삼진(K)과 볼넷(BB)의 비율이다. 이 수치로 간단하게 투수를 파악할 수 있다. 삼진은 투수의 힘이다. 볼넷은 제구력이다. 투수에게 가장 필요한 두  가지다. K/BB 비율이 높을 수록 엘리트급 투수 대열에 속한다. 통산 비율이 3/1이면 매우 우수한 투수다. 박찬호는 1.88이다. 

올해 류현진에게 두드러지는 기록이 K/BB의 비율이다. 장외 1위다. 삼진 33개를 낚는 동안 볼넷은 단 2개를 허용했다. 16.5/1이다. 현재 장외 1위다. 이 비율이 그대로 이어질 수는 없다. 제구력의 마법사로 통했던 그렉 매덕스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투수의 K/BB 역대 최고 기록은 2014년 미네소타 트윈스 필 휴즈의 11.62다. 휴즈는 삼진 186 볼넷 16개를 기록했다. 다저스의 클레이튼 커쇼도 장외 기록을 갖고 있다. 부상으로 규정이닝을 채우지 못한 2016년 삼진 172 볼넷 11개로 15.6의 K/BB 비율을 작성한 바 있다. 올해 이 부문 선두는 워싱턴 내셔널스 맥스 셔저다. 사이영상을 3차례 수상한 셔저는 10.80이다. 삼진 54개에 볼넷은 5개다. 

타자는 거꾸로 BB/K다. BB는 선구안이고 K는 컨택트 능력을 파악한다. 현역 최고 선수 LA 에인절스 마이크 트라웃이 2.07로 가장 좋다. 볼넷 2.07를 얻을 때 삼진 1개를 당했다는 뜻이다. 텍사스 레인저스 추신수는 0.59다. 


 

글 문상열
라디오서울 스포츠 해설위원
moonsy102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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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문상열 라디오서울 스포츠 해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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