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 먼저? 와인 먼저?
섞어 마시면 더 취한다는데…

주당들은 다 알지만 술을 마시기 시작하면 한가지 술만 마시게 되지 않는다. 소주로 시작해서 맥주로 끝내기도 하고, 둘을 섞어 소맥을 마시다가 위스키로 입가심하는 경우도 있다. 와인 주당들은 스파클링 와인으로 시작해 화이트, 레드 와인를 거쳐 디저트 와인까지 풀코스를 완주하는 일이 드물지 않다. 

그런데 미국사람들도 그런 모양이다. 미국 주당들 사이에는 “맥주를 먼저 마시고 그 다음에 와인을 마시면 숙취가 덜하다”는 이야기가 널리 퍼져있다. 그 말인즉 반대로 와인을 먼저 마시고 맥주를 마시면 행오버가 있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과연 진짜 그런지 하버드 의과대학 부교수인 닥터 로버트 슈멀링(Robert H. Shmerling, M.D.)이 임상실험을 진행했고, 그 결과를 임상영양학 저널(Journal of Clinical Nutrition) 최근호에 발표했다. 다음은 그 내용이다.

연구진은 19~40세의 건강한 성인 90명을 무작위로 3개 그룹으로 나누어 술을 마시게 했다. 세 그룹의 참가자들은 성별, 몸집, 음주습관, 숙취의 빈도가 비슷한 사람들이었다.


그룹 1 : 체내 알코올 수준이 적어도 0.05 퍼센트에 이를 때까지 맥주를 마시고, 체내 알코올 수준이 0.11 퍼센트가 될 때까지 와인을 마신다. 0.11은 음주운전 법적 허용치(캘리포니아에서는 0.08)를 훨씬 넘는 수준이다.

그룹 2 : 반대로 체내 알코올 수준이 0.05 퍼센트가 될 때까지 와인을 마시고, 0.11 퍼센트에 이를 때까지 맥주를 마신다.

그룹 3 : 맥주든지 와인이든지 자기가 원하는 한가지 종류의 술을 체내 알코올 레벨이 0.11 퍼센트에 이르도록 마신다.


이 실험을 가진 후 일주일 후에 같은 실험을 반복했는데, 이번에는 그룹 1과 그룹 2의 대상자들에게 지난번과 반대의 순서로 술을 마시게 했다. 그룹 3의 사람들은 지난번에 와인만 마신 사람은 맥주만을, 맥주를 마셨던 사람은 와인만을 마시게 했다. 두 번의 실험 후에 각각 숙취의 정도를 평가했다.

통설에 따르면 와인을 먼저 마시고 다음에 맥주를 마시면 맥주의 탄산작용이 와인의 알코올을 더 많이 흡수하게 하므로 더 많이 취하고 행오버도 심해진다. 따라서 맥주 다음 와인을 마시는 사람들이 와인 다음에 맥주를 마시는 사람보다 숙취가 덜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험 결과는 그렇게 나오지 않았다. 술의 종류나 순서는 행오버 증세와 아무 관련이 없는 것으로 판명됐다. 맥주-와인의 순서로 마신 사람, 와인-맥주의 순서로 마신 사람, 와인만 마신 사람, 맥주만 마신 사람, 이걸 반대로 마신 경우, 모두가 다 숙취와는 상관관계를 나타내지 않았다.(숙취의 증세는 술 마신 사람이 취했다고 느끼거나 음주 후의 구토가 기준이었다.) 결국 행오버는 마시는 양에 달린 것이라는 얘기다.   

닥터 슈멀링은 “술의 종류와 마시는 순서와 상관없이 모든 술의 알코올은 체내에 빠른 속도로 흡수된다”고 말하고 “중요한 것은 마시는 양이므로 절제함으로써 절대로 음주 운전을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참고로 맥주와 와인과 증류주(위스키나 코냑)의 알코올 비율은 같은 양으로 비교했을 때 대략 3배씩 높아진다. 즉 위스키 한 잔을 마시는 것은 똑같은 잔으로 와인을 3잔 마시는 것과 같고, 똑같은 잔으로 맥주 10잔을 마시는 것과 같다.

글 : 정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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